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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화암 정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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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건영 댓글 0건 조회 659회 작성일 23-01-29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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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독립투사라고 하면 안중근, 윤봉창, 김구, 김좌진 등을 떠 올린다. 하지만 우리에게 알려지지만 않았지 당시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위대한 업적을 남긴 독립투사가 항일운동가 화암 정현섭(1896, 9, 14. ~ 1981, 1, 21.) 이다.
\  3·1운동은 일제강점기에 한국인들이 일제의 지배에 항거해 한일병합조약의 무효와 한국의 독립을 선언하고 비폭력 만세운동을 시작한 사건이다.
정화암은 1919년 3·1운동에 참가하면서 항일운동에 뛰어들었다. 만세 시위에 참여한 뒤 1920년에는 미국 의회 사절단이 조선을 방문했을 때 이들에게 조선인의 독립 의지를 알리는 활동을 계획했다. 이 때문에 경찰의 추격을 받게 되면서 1921년에 중국 베이징으로 망명했다.
1924년부터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이회영, 신채호, 박열, 신성모 등 독립운동가들과 만나 함께 활동했다. 1931년 원심창이 합류하자 조직을 강화하고 상해 일대에서 친일파 및 전향자 등을 사살했다.
1936년에는 국내 호서은행에서 5만 7천원을 탈취하여 기관지 <남화통신>을 창간, 발행기금으로 활용하고 남화통신을 통해 독립사상을 고취 시켰다.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고 1940년부터는 상하이에서 광복군의 현지 책임자로 활동했다.
태평양 전쟁중에 포로수용소의 소재지를 정탐해 미국 공군에 보고하는 정보활동을 벌였다. 또 일본군으로 강제 징집된 조선인 학도병의 탈출 학도병을 임시정부로 보내는데 후원했다.
1945년 광복 이후 정화암은 상하이 한인 인성학교 이사장, 상하이 교민단 이사 등을 역임했다. 그 후 귀국하여 1960년 총선에 출마했지만 민주당후보 조한백에게 패배하였다.  그 후 1961년 통일사회당 정치위원에 추대되었고 5·16혁명으로 붙잡혀 6개월간 징역을 살고 1969년 3선개헌에 반대해 삼선개헌반대 범국민 투쟁위원회 고문으로 참여했다. 1973년 통일당 최고위원, 1974년 통일당 상임고문에 추대됐고 1947년 민주화회복 국민 선언에 참여했다가 1981년 10월 21일 85세로 사망했다.
1983년 대한민국 국가보훈처에서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저서로 《이 조국 어디로 갈 것인가 : 나의 회고록》, 《어느 아나키스트의 몸으로 쓴 근세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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