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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명의 허임(許任)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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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당쇠 댓글 0건 조회 7,481회 작성일 07-01-17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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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임의 출생년도와 사망년도가 대략 1570~1647년이라는 추론이 있으나 정확하지는 않고, 출생지가 어디인지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가 쓴 침구경험방 서문 끝부분에 하양허임(河陽許任)이라고 밝혀 하양(河陽)이 그의 본관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양허씨세보(河陽許氏世譜)를 검토하면 허임은 하양허씨 문경공파 21세손으로 허락(許珞)의 아들이고, 벼슬은 가선대부(嘉善大夫-종2품의 품계)로 양주목사(楊州牧使)를 지낸 것으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허임의 묘는 원래 공주군 장기면 무릉리에 있던 것을 그의 부모 묘소와 아들의 묘소가 있는 공주군 우성면 한천리로 1981년에 이장되어 있습니다.
허임의 출신에 대해서 조선왕조실록에는 그의 부친은 허억봉(許億逢) 혹은 허억복 혹은 許億福)이라는 이름의 악공(樂工)으로 관노(官奴)였고, 그의 모친은 사비(私婢)였다고 전합니다. 이러한 사정의 배경에는 그 시대로부터 약 100여년을 거슬러 올라가 허임 선생의 조상이 겪었던 역사적 사건과 관계가 있습니다.
허임의 9대조는 세종대왕 때 좌의정을 지낸 문경공 허조(許稠)였습니다. 그러나 그 허조(許稠)의 아들 허후(許?: 허임의 8대조인 허눌의 친형)는 수양대군의 정권장악에 반대하다 귀양을 가서 교형을 당하고, 그 허후의 아들인 허조(許稠: 허임의 7대조인 허담의 친형, 허후가 자식이 없어 허눌의 큰아들을 양자로 들였음)는 사육신 등과 함께 단종복위를 기도하다 발각되어 자결하였고, 이에 연루되어 허조(許?)의 두 아들도 교형을 당하였습니다.
그 일이 있던 세조 2년(1456년) 당시 허조(許?)의 손자 허충(許忠)은 어린 아이였으므로 괴산으로 유배되었다가 관노가 되는 것으로 하였고, 그 당시 허임의 조상도 장손 허충의 집안과 함께 괴산으로 유배되어 관노로 부처된 것입니다. 허임의 7대조인 허담의 묘가 괴산에 있는 것이 이 사실을 뒷받침해 줍니다. 그 후 세조 10년(1464년)에 사면이 되었으나, 허임의 조상들은 복권이 늦어지고, 한번 관노가 되면 쉽게 그 신분을 벗어나기 어려운 시대사정으로 허임의 아버지를 관노라고 한 것으로 풀이 됩니다.
하양 허씨 족보상에는 허임의 아버지는 허락(許珞)으로 되어 있고, 벼슬이 한성판윤이라고 되어 있어 조선실록의 기록과 차이가 있습니다.
이는 당시 자식이 벼슬을 하면 그 아버지와 할아버지에게도 사후에 벼슬을 내려 위계질서를 세우려는 유교국가의 제도가 있었고, 이름이 조선실록의 기록과 족보상의 기록이 다른 것은 허임의 부친이 또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었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허임기념사업회 이사회 개최 2005년 9월9일 허임기념사업회 이사회가 종로구 와 룡동 21번지 사무실에서 ... 침구의 별도 선발 경국대전 명시 시민의신문 허임 역사발굴 특집 보도

허임 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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