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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이씨임영대군파 소개

작성일 20-03-11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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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영섭 조회 6,14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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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이씨임영대군파 소개 동영상 나레이션

<이한>
우리 전주이씨의 시조의 휘는 “이한”이요 자는 “견성”으로서 신라문성왕때 사공벼슬을 지내셨고 부인이신 경주김씨는 신라 태종 무열왕의 10세손인 군윤 은의 따님이시다.
시조 이한의 묘소는 전주시 덕진동 건지산에 있는 조경단으로서 1973년 6. 23일 지방 천연기념물 제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매년 양력 4월 14일 전주이씨 종손들이 모여 조경단 대제를 지내고 있다.

전주이씨의 분파는 122개 파로서 대부분 왕자대군과 왕자군을 파조로 하고 있으며, 시대 구분에 따라 세 갈래로 나눌 수 있다. 즉, 이태조의 고조부인 안사 상계에서 갈라진 파,  안사이후 이태조 이전에 갈라진 파, 이태조의 후손으로 왕자대군 왕자군을 파조로 하는 파이다.
그중 우리 임영대군 파는 이태조의 후손에 해당된다.

<태조대왕><건원능><경기전>
시조로부터 22세손인 태조고황제의 휘는 “단”이며 지는 “군진”, 옛휘는 “성계”, 호는 송현이다.
태조 이성계는 고려 말기의 신흥 사대부 계층을 대표한 무인으로서, 1393년 2월 15일 국호를 조선이라 하여 새 왕조를 세웠다.
조선이 건국되자 왕기를 공고히 하기 위하여 경기전을 세우고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봉안하였으며 이때가 태종 14년(서기1414년) 이다 이곳엔 전주이씨의 시조 이한공과 시조비의 위패를 모셨다.
(소재 :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 3가 102 유형문화재 2호 , 16호)
태조대왕의 묘는 건원능으로서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 에 있으며 음력 6워 27일에 시향을 모시고 있다.
태조대왕의 묘를 자세히 살펴보면
<북동서 방면 3면(面)의 장(曲墻) 안에 단릉(單陵)의 봉분(封墳) 형식으로 봉분 앞 중앙에 상석과 장명등(長明燈)을 설치하고 양 옆에는 한 쌍의 망주석(望柱石)을 두었습니다. 그리고 한 단 아래의 좌우에 문인석(文人石)이 뒤에 석마(石馬)를 대동하고 있고, 그 아래 단에 역시 좌우로 무인석(武人石)이 석마(石馬)를 뒤에 거느리고 있어 왕릉의 위엄을 갖추었습니다
 또한 건원릉에는 홍살문(紅살門) 안쪽 정자각 우측 비각(碑閣) 안에 태조의 업적과 명복을 비는 신도비(神道碑)를 함께 세우고 있습니다. >

<세종대왕><영릉>

태종의 셋째 아들이며 조선의 4대왕인 세종대왕의 휘는 “도” 자는 “원정”으로서  15세기 우리나라에 가장 빛나는 업적을 이룩한 임금이다. 22세의 나이로 임금이 되어 첫 사업으로 학문을 연구하는 연구소격인 집현전을 설치하였으며
세종은 우리 고유의 말과 글의 필요성을 느끼고 읽기 쉽고 배우기 쉬운 훈민정음 28자와 용비어천가라는 한글 책을 엮으셨다, 세종대왕은 백성을 가장 편하게 하는 정치와 훌륭한 치적을 쌓은 어진 임금이었고 우리 문화를 창달 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대왕이시다.

세종대왕의 묘는 “영릉”으로서 경기도 여주군 능서면 왕대리에 위치하며 음력 4월 8일이 시향일이다.

<영릉의 능원(陵原) 구조는 봉분(封墳)에 병풍석(屛風石)을 두르지 않고 난간석(欄干石)만 두른 단릉(單陵)으로 상석(床石)이 두 개 놓여 합장릉(合葬陵)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임영대군>
임영대군은 세종대왕과 소현왕후 심씨 사이에서 4째 아들로 태어 났다.
대군의 자는 “구”, 휘는 “헌지”이시며, 시호는 “정간”이다.
대군은 평생을 정의 성실 청렴 검약으로 일관하였으며, 성품이 조용하고 인자하며 부귀를 탐하지 않으셨으며 세종대왕의 왕자들 중에서 가장 청빈하게 생활 하셨다. 또한 의기는 활발하고 의론에 뛰어나 사람들을 향상 감동 시켰다. 무예에도 능하시어 어전 시궁시 강궁으로 명중시키는데 남달리 뛰어나 부왕과 문무백관의 예찬도 받으셨다.
공은 학문에 뛰어났을 뿐 아니라 화포, 화차의 제작을 감독하는 등 병기개발에 힘써 세종대왕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다.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하자 홀로 지금의 경기도 의왕시 내손동으로 숨어들어 초가를 짓고 국태민안을 기원했다. 왕자간의 골육상잔을 경험한 임영대군은 이후 동기간의 우애회복에 노력했으며, 왕자·왕손간에 분쟁을 일으키지 말 것과 백성들에게 해 끼치지 말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
1470년 정월 50세의 일기로 타개 하셨으며 신도비를 세우지 말라는 공의 유언에 따라 신도비는 존재하지 않고 묘비만 세우고 행장은 강희맹이 지어석함에 담아 상석 밑에 묻었다고 전한다. 대군의 묘역은 내손동 150번지 사패지지(賜碑之地)에 묘역(墓域)과 사우(祠宇)가 있는데 경기도 문화재 제98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안평대군 글씨로 알려진 봉분 비석에는 ‘조선국왕자임영대군정간공지묘’(朝鮮國王子臨瀛大君貞簡公之墓)라고 새겨져 있다. 음력 2월 18일이 향사일이다.
 시호를  정간이라 함은 평생을 청백하게 살고 절개를 지쳤으므로 “정”, 진실하고 대쪽같다 하여 “간”을 쓴 것이다. 


<1오산군>
대군의 장남인 오산군의 휘는 주이고, 시호는 정목이시다.
부인은 찬성 창녕성씨 “임”의 딸과 연안김씨의 두분으로서, 창녕성씨는 아들은 없고 딸 둘만 두었고 연안김씨는 창평수, 희제정, 적천수, 홍양수, 덕안도정, 엄천수, 온천수의 7남을 두었다.
1444년 세종 26년에 공의 나이 8세에 비로서 정의대부 오산군에 봉해지고 벼슬은 현록대부에 이르렀다.

1490년 에 54세로 별세하셨다. 묘는 서울 도봉구 방학동 산 61-1 에 있으며



<2구성군>

대군의 2남이신 구성군의 휘는 준, 자는 “자준”이시다.  제안 부부인 전주최씨의 둘째 아들이시다.
배위는 천안 군부인 청주 한씨로 좌의정 백륜의 따님이시다.
세조대왕 때에는 영의정을 지내셨으나 성종때 무고죄로 경북 영덕군 영해면으로 귀양 가셨고 후사가 없이 지내시다 1479년에 생애를 마치셨다.

<3정양군>
대군의 3남인 정양군의 휘는 “순”이요, 자는 “비숙”이시다. 배위는 풍천 군부인 진주강씨 감사 자평의 딸이시다. 
일찍이 공은 종친부와 내수사 사옹원의 도제조를 맡아 정1품 홍록대부를 받으셨다.
공이 병이 들었을 때 성종대왕은 의사와 약을 하사 하였으며 그 후 부음을 듣고 부의를 내리고 관부에 명하여 후하게 장사 지내게 함으로써 남다른 은총을 보이셨다.
묘는 경기도 포천군 소흘면 이곡리 산21번지에 있으며

<4팔계군>
대군의 4남이신 팔계군은 덕성군의 후손으로 출계하셨고 벼슬은 현록대부를 지내셨다. 시제일은 음력 10월 1일이다.

<5환성군>
5남이신 환성군은 후손이 없으셨고

<6영양군>

6남이신 영양군의 휘는 “함”, 자는 “자허” 이다. 배위는 평산 신씨와 청주한씨이다.
하빈수 인손, 동산수 의손, 오성도정 신손, 해구군 현손, 청화군 준손, 장년부수 종손, 능성령 말손의 아들들을 두고 있다.
공은 성품이 온화하고 재질이 뛰어 났으니 임영대군은 이를 기특히 여겨 유훈하기를 “나의 죽을 해는 이미 정해졌으니 남은 날이 없다. 내가 죽은 뒤에 너는 마땅히 선왕의 법복, 법언, 법행을 살펴야 한다. 깊이 마음에 새기라.” 하였다 
 어린 나이에 경사를 통달 하였으며 양관에 성리학 이치를 궁구 하였다. 처음에 영양부정에 봉해지고 이어 오위도총부 도총관에 임명되어 관직에 오른지 10년 동안 나라와 종실의 안녕에 힘썼으며 정의대부로 추증 받으셨다.

1526년 3월 1일에 별세하시니 향년 69세 이다. 묘는 과천현 동면 장의동 지금의 서초구 서초동에 있었으나 도시계획으로 경기도 광주군 실촌면 신대리 산1번지로 천묘 하였다. 시제일은 음력 10월 10일이다.

7남이신 단계부정 휘 린은 1460년에 태어나 1521년에 졸하셨고 묘소는 실전 되었다.


<8윤산군>

대군의 8남이신 윤산군의 휘는 “탁”이요 자는 자광이며
공의 성품은 맑고 고요하여 오직 화초를 기르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으셨다. 처음 품계는 부정 이었으나 도정, 명선대부의 품계에 오르셨다. 중종반정이 일어난 뒤 생질인 신수군과 절친하다는 죄로 김해로 귀양 갔다가 이듬해에 복직되어 1541년 정의대부에 올라 봉군되시고, 1543년 중종 38년에 다시 중의대부에 오르셨다. 1547년 82세로 별세 하셨으며, 묘소는 광주 의곡, 지금의 의왕시 학의동에 있다. 시제일은 양력 11월 첫째 일요일이다.

<9옥천군>
대군의 9남이신 옥천군은 휘는 옥 자는 연모로서 명선대부 벼슬을 지내셨고 정의대부로 추증되셨다.
묘소는 경기도 고양시 지축동 산 63번지에 있고 시제일은 음력 10월 15일 이다.

모쪼록 우리 임영대군의 후손들은 숭조돈종의 정신을 이어 나가 인륜을 밝히고 혈통을 바르게 하여 조상의 거룩한 정신을 계승발전 시키고 종족간의 화합을 돈독히 해 나아야 할 것이며, 조선왕조 오백년을 통하여 가장 훌륭한 성군으로 추앙되어온 세종대왕의 후예로서 자랑스런 조상들에게 부끄럽지 않는 후손이 되기 위해 오늘도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갈 것을 다시 한번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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